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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 토크 (2013)
★★★★
차일주 × 정의현



정의현은 어느덧 경력이 10년차에 접어드는 무명배우입니다. 매니저도 없이 본인이 직접 수수료를 내고 캐스팅을 따러 다녀야 하지만 그는 언제나 성실하게 연기를 할 뿐입니다. 특별히 대스타가 되겠다는 욕심도 없어요. 그는 정말로 연기가 좋아서 연기자를 직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던 감독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정의현은 짧은 단역 씬을 마치고 모임 장소로 달려갑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잠시 잠들었다가 문득 일어나보니 텅 빈 방안에 홀로 누워있는 것입니다. 서둘러 옷을 챙겨 나가려던 그는 그의 옷이 걸린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멈칫합니다. 아무도 없는 홀에 묵묵히 앉아있는 사람은 정의현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한국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더 잘나가는, 명실상부한 탑스타 차일주가 그곳에 덩그마니 앉아 있습니다.


첫만남에서 어쩐지 그와 살갑게 인사를 나눈 정의현은 이어지는 그의 관심에 당황합니다. 국내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는 걸로 알려진 남자가 유독 정의현에게 살갑게 굴거든요. 어색해하면서도 정의현은 점차 그와 친분을 나누게 됩니다. 혼자 버텨가던 삶에 나타난 다정한 사람에게 어쩔수 없이 마음이 가게 되는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차일주는 약간의 호모포비아 성향이 있어서, 정의현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심지어 애써 가로막다 간신히 내뱉은 고백도 씁쓸하기 짝이없어요. 그로 인해 관계가 뒤틀릴거라는 걸 알면서도 한 고백이지만 정의현은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다시 차일주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잇고 싶을 뿐이에요.


차일주는 종잡을수가 없어요. 그가 정의현한테 대하는 행동이 말입니다. 시간이 비는 대로 촬영장을 따라다니고 개인번호도 알려주고 집까지 따라가 밥도 얻어먹고 심지어 그가 혼자만 속해있는 소속사에 정의현을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계략공은 아닌 것입니다... 그는 순수하게 좋은 친구라서 마음이 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평소 사람들에게 적당히 선을 긋는 사람이 살갑게 구는게 답지 않다며 주위에선 의아해합니다. 그러니 정의현에게 고백을 받고 난 차일주가 혼란스러움보다는 이 관계를 망치자는 것이냐는 일말의 배신감을 더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의현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고심하던 차일주는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자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러나 그가 마음 먹은 그 순간에, 정의현은 그의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두 사람은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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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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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현 씨는 그냥 좋아해주면 안돼요?
내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든, 본래 모습이 어떻든, 늘 웃지 않아도, 항상 친절하지 않아도, 조금은 못되게 굴어도....

당신만은 날 좋아해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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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이시즌님 글은 저랑은 잘 맞지 않아요. 많이 기대했던 아나스타샤가 그랬지요. 그렇다고 연예계 3대 소설이라는 필로우 토크를 안 볼 수는 없었고, 볼까말까 하던 고민이 무색하게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사소한 아쉬움은 몇가지 있어요. 굳이 필톡을 이야기하는게 아니고, 저는 연예계물에서 촬영씬이라거나 연기할 내용이 나오면 그렇게 오그라들더라구요... 촬영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대단히 섬세하게 짜여진 미쟝센이 아닌이상 한번에 컷 하고 씬 마무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일은 없어요. 왜냐면 완성물은 여러가지 각도로 편집되기 때문에 같은 장면이더라도 여러번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경, 2인샷, 반신샷, 근접샷... 필요한 만큼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작업입니다. 가수도 아닌데 동선을 짜는 이유가 달리 있는게 아니겠지요. 소설에서 이런 부분을 일일이 지적할 순 없겠지만 그냥 오그라드는건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또다른 아쉬운 부분인데요. 정의현이 강대웅에게 차일주를 아웃팅한건 약간의 설정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을 굳이 드러낸것도 그렇거니와 게이라는 이유로 폐를 끼칠까봐 소속사를 나올 생각까지 하던 그 정의현이 주저없이 아는 형에게 차일주와 사귀게 됐다는 말을 하다뇨. 믿는 사람이라서? 김기자는 못믿는 사람인가요. 동류라서? 그렇게 오랜 인연도 아닌데다가 연예계에 발담근 사람에게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닌데요. 신중한 정의현이 그랬다기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냥 차일주가 먼저 얘기했다면 좋았을텐데요.


어쩌다보니 잡담이 길어졌는데... 사소한 부분들입니다. 결국 중요한건 필톡이 재미있다는 거지요. 차일주는 다정하고 무엇이든 숨기지 않아요. 정의현은 단단하고 솔직하지요. 외전에서는 정의현의 동생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로지 달달하게 끝나더라고요. 궁금하셨던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후회없으실 거예요.



.


그날 그때부터 한 시간 후에도, 하루 뒤에도,
1년 혹은 그 뒤로도 매 순간순간의 미래에 의현씨가 없는 모습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러니까, 의현 씨 미래도 나한테 줘요.


.


당신이 정말 좋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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